판단 중독증에 내몰리는 현대인
여전히 판단이 잘 서지 않음에도
왜 그리 판단을 내리려고 하는지
할까 말까 하는 순간에도 주저없이 판단을 내린다
판단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데
망설이게 되는 건 당연지사
그럼에도 판단을 해야 한다면,
이판理判과 사판事判의 참뜻을
되새겨봄이 도움이 될 것이다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의미로
이판사판理判事判이란 말을 쓴다
이처럼 흔하게 쓰는 이판理判과 사판事判은
불교에서 유래한 말이다
대승불교의 최고경전 중 하나인 『화엄경』에서는
세계의 차원을 이理와 사事 두 가지로 설명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세계本質世界에 대한 판단이 이판理判이며
눈에 보이는 현상세계現狀世界에 대한 판단이 사판事判이다
불교에서는 이판理判과 사판事判 둘다 통달한 인물을 추구하나 보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현상의 문제에 집중하다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의 문제를 놓치게 되고,
본질의 문제를 추구하다 보면
발등에 떨어진 현상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모순에 빠지는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
이판理判과 사판事判의 통합統合이
얼마나 어려운가에 대한 답이 될 것이다
어느 정도는 순서가 있어 보인다
선사판先事判 후이판後理判
배움과 경험을 통해 학습된 사판事判에 근거한 삶을
우선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
그러면서 좋은 결과와 나쁜 결과를 경험하고
이 속에서 간과한 무언가 다른 문제가 있음을 조금씩 느끼면서
알게 모르게 이판理判의 세계에 다가가게 되는 것
이런 흐름이 맞아 보인다
나이를 먹어 가면서 기억력은 떨어지지만 판단력은 늘어간다고 한다
다르게 표현하면, 눈에 보이는 현상에 대한 사판事判은 떨어지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에 대한 이판理判은 늘어간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나이를 먹어서도 여전히
사판事判도 제대로 못하면서 이판理判까지
혀를 찰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남은 삶 이판사판理判事判으로 살아봐야겠다
常常 (2023.11.21)